트렌드의 흐름

라이프스타일 변화

나몰팁 2022. 7. 3.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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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촬영 때문에 스페인 톨레도 근교 호텔에서 묵었던 기억이 있다. 촬영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일행들은 밤 10시가 다되어 호텔에 도착했는데, 호텔은 스페인의 작은 고성을 개조해서 만든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촬영 일정 때문에 일행은 다음 날 새벽 호텔을 떠나야만 했다. 너무 아쉬웠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온전히 며칠 머무는 여행을 했으면 좋겠다.'

그 후로 꽤 오랜 세월이 흐른 얼마 전 처음으로 그런 여행을 했다. 아주 오랜만에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한 동네, 한 숙소에서 6일을 머물렀다. 차를 타고 유명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대신 민박집 주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머무는 방의 큰 창문에 제주의 동쪽 바다가 사진처럼 펼쳐졌고, 숙소 앞 해안도로를 따라 아침 달리기를 마치고 들어오면 주인집 부부가 정성껏 만들어준 아침 식사 바구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머지 시간은 근처 괜찮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바닷가에 나가 책을 읽고, 근처 책방을 어슬렁거리다 돌아오기도 했다. 그 동네 사람처럼 지내다 왔다.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인증 사진을 찍는 대신 한 지역에 머물며 그 동네의 생활을 즐기는 여행자가 늘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 스테이 폴리오 Stay Folio라는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가 생겨났다. 그들은 스스로를 숙박 큐레이션 서비스라고 정의한다. 큐레이션이라는 말은 사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신조어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전시할 작품을 기획하고 설명해 주는 사람을 뜻하는 큐레이터에서 기원하여 큐레이터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을 언젠가부터 큐레이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니 숙박 큐레이션이란 여행의 목적이나 여행자의 취향 등에 적합한 숙소를 큐레이터처럼 선정하여 제시하는 일을 한다는 뜻일 것이다.

이런 서비스는 기존에 존재하던 호텔 통합 예약 서비스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여행할 지역과 날짜를 입력하고 가격, 인원 등의 조건을 입력하면 예약할 수 있는 호텔을 제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고 싶은 지역에 있는 다양한 형태의 스테이와 각 스테이별 세세한 특징을 알려준다. 숙소에 머무는 것이 여행의 중요한 부분이 된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서비스이다. 스테이 폴리오의 슬로건은 '머무름만으로 여행이 되다'이다. 요즘 여행의 흐름을 잘 반영하고 있다. 스테이 폴리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여행하기 위해 숙소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숙소에 머물고 싶어 여행을 계획하게 된다. 스테이 폴리오는 자체적으로 서촌에 한옥 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에 사는 사람이 자기 집을 떠나 서울의 한옥에서 머물며 여행하는 일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된 것이다.

스테이 폴리오는 여행 라이프스타일의 진화에 따른 '업'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업'이라는 것은 때론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주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초기 수용자 그룹의 탄생과 때를 같이하며 변화한다. 배달의민족이 그랬고, 마켓컬리가 그랬다. 업의 원초적인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그것을 제공하는 방법이나 모양은 소비자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이런 변화는 작은 브랜드에는 양날의 검 같은 것이다. 어찌 보면 이 책의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인 '한 우물을 깊게 파라.' 와 배치되는 현상이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해 온 작은 브랜드는 환경의 변화에 대응해 자신을 변화시키기 쉽지 않다. 변화를 위해서는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 신중한 결정을 위해서는 현재 자신이 가진 '차별적 우위점이 지속적으로 작동할 것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자신의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핵심 DNA가 차별적이며 변화의 시기 이후에도 여전히 시장성을 가질 만큼 유효할 것인가를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면 한 우물을 파는 것이 답이고, 그렇지 않으면 빠르게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

20세기 말 맥킨토시 컴퓨터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았던 충무로 인쇄 골목에서 '아무리 컴퓨터가 다 해준다 해도 원색 분해나 제판 작업을 하지 않고 어떻게 인쇄 원고를 만들어?"라는 반응을 들었을 때 나는 이 골목에 곧 위기가 닥칠 것을 걱정했다. 디지털카메라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도 기존의 사업을 보호하기 위해 변화를 포기했던 코닥도 업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제대로 읽지 못했던 것이다.

반대로, 소비자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비교적 몸집이 작아 민활하게 움직일 수 있는 작은 브랜드에게 업의 흐름을 읽고 변화를 선도할 기회가 되기도 한다. 무신사는 원래 '무지하게 신발 사진이 많은 곳'이라는 이름의 온라인 커뮤니티였다. 신발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놀이터 같던 이곳은 2005년 〈무 신사 잡지>이라는 온라인 잡지로 변신했다. 온라인 콘텐츠를 통해 패션 정보를 공유하는 그 시대의 흐름을 잘 읽었던 것이다. 웹진의 기사를 읽다가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을 보고 그들은 2009년 웹진에 커머스를 결합해 무신사라는 패션 쇼핑몰로 변신한다. 마치 배가 강물을 타고 흘러 바다로 가듯 흐름을 읽고 변신한 무신사는 현재 3,500개가 넘는 브랜드를 보유한 기업가치 2조 원대의 유니콘 브랜드로 성장했다. 

-시장의 변화를 읽고 변화의 흐름에 따라 업의 흐름도 달라져야 한다. 흐르는 물을 따라 유유히 앞으로 가는 배처럼 자연스럽게.

시장의 변화를 읽기 위한 방법은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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